간염과 신우염
간염과 신우염
언제부터인가 운전하면서 내 손등을 보는 것이 즐거웁기 시작했다.
내 나이 36세, 내 평생에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지난 3년 동안 많이 일어났다.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을 때에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호주로 발령을 받아서 갑자기 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나라 또 체험 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로 간다는 즐거움에
들떠 앞에 놓인 어려움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호주에서의 생활은 모든게 순조로왔다.
한국인들도 꽤 있었고 호주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그러나,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출장이 잦았고
그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상의할 사람없이 모든 걸 혼자서 결정하고
또 감당해야 하는 삶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나는 점점 더 정신적으로 힘들기 시작했다.
일가친척없는 낯선 세계에서 아이들을 혼자서 뒷바라지하며 산다는게
외로움과 더불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간염 보균자였고 오후가 되어 낮잠을 자지 않으면
나머지 반나절을 버티기가 어려웠다.
나 뿐만 아니라 친정 엄마도 간이 좋지 않아 간암으로 돌아가셨고
언니, 남동생 여동생도 모두 간염 보균자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내 건강을 돌볼 생각도 못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에 몇가지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늘 피곤하고 얼굴빛이 누렇게 되고 칙칙해서 내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얼굴에는 기미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피부는 거무스름해져서 윤기가 없고
하얀 껍질이 일어나서 세수할 때 내 얼굴을 보기가 싫었다.
또, 오른쪽 가슴 아래로 갑자기 붉은 반점들이 많이 생겼다.
또 다른 증상은 한국에서 5년 전 쯤 앓았던 신우염과 방광염의 재발이었다.
소변을 봐도 또 가고 싶고, 방금 갔다 와도 또 가고 싶고 그랬다.
1시간에 7-8회 간 적도 많았다. 그래서 외출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이곳은 쇼핑, 애 학교 등하교, 또 아이 과외 받으러 갈때 등
모든 활동에 운전이 필수이다. 그래서, 제때 화장실을 가는 것도 수월하지 않았다. 그
런 이유로 증상이 더 악화되었다.
그래서, 한국에 사는 언니에게 약을 보내 달라고 해서 1주일 정도
복용을 하였는데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세번째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중, 8년 전 서울 남영동 교회 다닐 때 목사님 사모님께서
녹즙을 알려 주셔서 1년 정도 짜먹은 기억이 났다.
그 당시 녹즙을 마시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한결 수월했던 기억이 났다.
다행히 그 당시 쓰던 녹즙기를 호주까지 가져왔었는데 녹즙기를 꺼내서 녹즙을 짜던 중에
기계가 갑자기 멈춰서 열어보니 스크류가 망가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호주 옥션 사이트를 통해서 플라스틱으로 된 녹즙기를 구입해서
당근즙을 짜 먹었는데 당근 소모량이 엄청났다.
그거라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갈아 먹었는데 스크류가 플라스틱이라 쉽게 망가졌다.
그래서, 더 오래 쓸 수 있는 녹즙기를 어떻게 구입할 까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에
호주에서 사귄 친구가 엔젤녹즙기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그 동안 엔젤 녹즙기가 쇳가루 파동이 일어난 이후로 없어진 걸로 생각하고
찾아 볼 생각도 안했는데 정말로 반가운 일이었다.
사이트를 들어가보니 호주에도 엔젤 녹즙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구입을 하기 위해 전화를 해보니 헬쓰뱅크만 취급하고 있었고
건강상담을 하려고 했으나 자세히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 전화해서 이문현 회장님과 첫번째 상담을 했다.
사실 첫번째 상담이라고 해야 제품 가격 물어보고 간염 보균자라고만 했다.
그런데, 해외에서 전화를 하면 전화비가 많이 나올 것이라면서
회장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거의 1시간 정도 자세히 상담을 했다.
참 친절하신 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한 번 사면 평생쓰는 기계니
비싸더라도 즙이 많이 나오는 것을 써야 되겠다 맘 먹고 엔젤라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내 삶은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녹즙기가 오기를 꼬박 1주일 넘게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 같이 보내 주신 숯가루가 속에서 터져서 기계가 온통 검은 가루 투성이였다.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모든 청소 솔이며 망, 2권의 책들에 뭍은 숯가루를 털어
내면서도 녹즙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기뻤다.
그리고, 무공해 야채도 직접 길러 먹을 것을 권장하셔서 화단의 나무를 모두 베어 내고
비트, 케일, 배추, 상추, 딸기, 토마토 등을 길러 먹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기른 야채를 수확하는 기쁨을 늘 꿈꾸고 살았는데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되어서 기뻤다. 야채를 기르는 일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정성만큼
손이 많이 갔지만 내가 정원을 손볼 때 아이들은 나와서 나비를 잡고
또 오이며 딸기를 따 먹는 걸 보면서 행복했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는 중에도 회장님과 질병에 관한 상담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고
권유하신 단식과 관장을 시작했다. 원래 비위가 약하고 녹즙이 맛있게 느껴지지 않아서
처음 며칠은 참으로 힘들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평생 간염 보균자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한 두달이면 호전이 가능하다고 하시니 멈출 수가 없었다.
처방대로 비트, 오이, 당근, 미나리, 감자즙과 레몬, 오렌지, 자몽을 배합해서 짜먹고
하루 2번에서 4번의 관장을 했다. 배가 많이 아팠다.
안식일 교인으로 13년을 살면서 그래도 현미밥에 육식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왠 숙변이 그렇게 끝이 없이 나오는지 정말 지겹다고 느꼈다.
아이들 밥을 챙겨 줄때 마다 식욕을 억제하기 어려워서
첫번째 단식은 10일 동안하고 3일을 다시 식사를 했다.
그러다가 고생한 김에 숙변을 다 빼야지 하고 다시 단식에 들어갔다.
숙변을 완전히 제거해야 질병의 절반이 호전이 된다던
회장님의 말씀때문에 단식을 멈출 수가 없었다.
두번째 단식은 7일 동안 계속했다.
하루 15잔에서 18잔의 녹즙과 과즙을 마시면서 했는데 여전히 숙변은 끝없이 나왔다.
또, 요리할 때마다 남는 음식은 아깝고 배도 고파서 다시 밥을 먹었다.
그 때 먹는 밥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반찬없이 현미밥만 해서 먹어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3번째 단식에 들어갔다.
3번째 단식은 4일을 했는데 관장의 횟수가 더 늘어날수록
관장액을 주입하고 참을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4일째 단식때 하얀 찌꺼기 같은 것이 나왔다.
그것이 나오면 숙변이 거의 제거된 것이라고 알려주셔서 얼마나 기쁘던지....
42번째 관장이었다.
이미 내 피부는 맛사지를 받은 것처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끄러웠고
운전대를 잡은 내 손가락과 손등이 유쾌하게 반짝거렸다.
몸은 뼈와 가죽 밖에 남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너무나 맑고 상쾌했다.
기미가 거의 빠지고 피부톤이 건강하고 밝게되어서 세수할 때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이 행복했다. 또하나 놀라운 것은 생리를 할 때 불쾌한 냄새가 거의 없었다.
피가 깨끗해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오른쪽 가슴 아래로 갑자기 많이 나타났던 조그만 빨간 반점들을 몸이 피곤하고
나이가 들어가니까 나타나는 걸로만 알았는데, 산성 체질이 되어가면서
암 체질로 되가는 징후라고 알려주셨다.
단식과 관장이 끝나가면서 50%정도 사라졌다.
단식과 관장이 끝나고도 매일 1300-1700ml씩 녹즙과 과즙을 먹고 있다.
이제 7개월에 접어드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겨드랑이에
희미한 붉은 반점 한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신우염도 회장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녹즙을 꾸준하게 마신결과
1개월 정도 지나니 옆구리 통증이 없어졌다.
이제는 장거리 운전을 해도 걱정을 안하게 되었다.
오늘도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지않고 녹즙으로 대신했다.
큰애는 250ml씩 30분간격으로 2컵, 작은애는 220ml씩 30분 간격으로 2컵,
나와 남편은 350ml씩 2컵 아침 저녁으로 짜먹고 점심에는 과즙을 먹는다.
토요일과 일요일 우리 가족은 저녁을 먹지 않는다.
남편은 늘 얼굴에 여드름처럼 뾰로지가 많이 났었는데 녹즙을 마시면서
평생처음으로 다 없어졌고 또 피부가 여자피부처럼 매끄럽게 되었다.
건강을 회복하도록 밤낮으로 건강상담을 해주신 이문현 회장님과 사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또 개인적으로 참으로 건강에 관한 한 모르는게 없으시지만
늘 겸손하신 회장님께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출처] 천연치유교육센터
http://healthcounsel.co.kr/html/menu3/menu34.html